n번방 사건이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특히, 74명의 피해자 중 아동청소년이 16명에 달한다는 사실과 함께 범죄 수법의 잔인함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더욱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하지만, n번방은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한 것이 아닙니다. n번방 이전에도 대한민국에는 성착취로 고통 받는 수많은 아동들이 있었습니다. 단지, 우리 사회가 그들을 ‘범죄의 빌미를 제공한 자’, ‘대가를 받고 자발적으로 성을 판 청소년’으로 대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민지(가명)는 아버지의 학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을 뛰쳐나왔습니다. 가진 돈이 다 떨어져 갈 무렵, 채팅앱에서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남자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던 민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괜찮다고 위로해주었습니다. 민지가 원하면 재워주고, 용돈까지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돌아갈 곳이 없었던 민지는 남자의 제안에 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민지가 믿고 따랐던 그 남자는 사실은 돈을 미끼로 민지를 길들이고 이용하기까지 한 ‘성착취 가해자’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현행법(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이하 아청법)에서는 민지를 피해자가 아닌 ‘대상 청소년’으로 규정하며, 성을 매수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민지에게도 그 책임을 지우고 있습니다.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 2조의 7 “대상 아동ㆍ청소년”이란, 제13조 제1항의 죄의 상대방이 된 아동 청소년을 말한다. 제 40조(대상아동 청소년 등에 대한 보호처분) ① 제39조제1항 또는 제44조1항에 따라 사건을 송치 받은 법원 소년부 판사는 그 아동청소년에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보호처분을 할 수 있다. 1. 「소년법」 제32조제1항 각 호의 보호처분 2. 「청소년 보호법」 제35조의 청소년 보호ㆍ재활센터에 선도보호를 위탁하는 보호처분 |
언뜻 보아서는 현행법이 성매매에 가담한 아동ㆍ청소년을 ‘보호’하고 바른 길로 ‘선도’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행법은 성매매에 유입된 아동ㆍ청소년을 ‘피해 아동 청소년’과 ‘대상 아동ㆍ청소년’으로 구분하여, 자발적으로 성매매에 가담한 것으로 판단되는 아동ㆍ청소년, 즉 ‘대상 아동ㆍ청소년’에게는 사실상 형사 처벌에 준하는 처분을 부과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동ㆍ청소년들이 스스로 피해 사실을 드러내기 어렵게 하며 성매수자와 알선자들이 이 약점을 악용해 지속적으로 성매매를 강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마치 n번방 피해 아동 청소년들이 지속적으로 끔찍한 일을 경험하면서도, 누구에게도 신고 하지 못하고 착취의 굴레 속에서 계속 고통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대상 아동ㆍ청소년’조항을 삭제하자는 요구는 벌써 10년도 넘게 이어져 왔습니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대상 아동ㆍ청소년’을 ‘피해 아동청소년’으로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권고를 발표하였으며, 2018년 2월, ‘대상 아동 청소년’조항을 삭제하는 개정안이 국회 여성 가족위원회를 통과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가결된 지 2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법무부의 반대 등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법안심사2소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착취 피해아동에게 되려 책임을 묻는 현행 규정은 국제인권규범에도 명백히 반합니다. 2019년 10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에 다음의 사항을 권고했습니다.
“성매매 및 성적학대에 연관된(“대상 아동”) 모든 아동, 다시 말해 만 18세 미만의 모든 개인을, 법률상 “피해자”로 명시, “보호처분”폐지, 지원서비스 및 법적 조력 제공, 보상과 구제를 포함한 사법절차 접근성 보장 등을 포함하여, 범죄자로 취급하지 않고 피해자로 처우하라” |
현재 많은 국민들이 디지털 성범죄 근절, 성범죄자 처벌강화,
가해자 신상공개 등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여기에서 한발자국 더 나아가 범죄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다해야 할 때입니다.
20대 국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청법 개정이 또 미뤄진다면,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눈부신 IT 산업의 발전과 결합한 또 다른 형태의 n번방 괴물이 탄생할지도 모릅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현행 법률이 개정되지 않는 한, 아동ㆍ청소년이 성착취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위급함을 느끼며, ‘아동ㆍ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아청법 공대위)’와 함께 아청법 개정을 촉구하고자 합니다.
(※ 아청법 공대위: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이 피해자로서 보호받고 온전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조직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포함 373개의 시민단체 모임입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함께해주세요!
10만명이 동의하면, 청원이 접수되어 국회가 응답합니다.
*청원 처리절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