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사업 [한겨레 나눔꽃 캠페인] 수술 또 수술..락이와 함께하는 오늘만을 떠올립니다.

등록일2022.05.12조회241

텍스트 축소 버튼텍스트 확대 버튼

[한겨레 나눔꽃 캠페인] 수술 또 수술..

락이와 함께하는 오늘만을 떠올립니다.

 

두 달 만에 받아든 희귀병 진단
두개골이 일찍 붙어 뇌가 못 자라
수두증·이마·기형 등 숱한 수술
기도 유난히 좁아 아찔한 순간도

 

 

 

선선한 봄바람이 불어오던 지난달 28일 낮, 경기도에 사는 네살 락이(가명)는 거실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락이가 뽀로로 모형이 달린 펜을 들고 책에 그려진 김밥을 꾹 누르자 펜에서 ‘김밥’하는 소리가 나왔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락이는 여러번 같은 그림을 누르고 펜을 귀에 갖다 대기를 반복했다. 남들보다 기도가 좁은 락이의 목에서 ‘김밥’ 대신 ‘꺽꺽’하는 소리가 나왔다. 아빠와 엄마는 놀이에 집중한 락이를 애정이 듬뿍 담긴 눈빛으로 쳐다봤다. 다섯달 전, 락이가 위험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파이퍼증후군’을 갖고 태어난 아기]
 

“태명을 락이로 하자. 락이를 만나는 모든 사람이 기쁠 수 있도록.” 아빠는 아기가 사는 엄마의 뱃속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타국에서 연고 하나 없는 한국에 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고 있었던 엄마는 한국 생활 6년 차에 아빠를 처음 만났다. 엄마는 아빠의 매사 단정한 모습이 자꾸 눈에 아른거렸다. 만난 지 6개월 만에 결혼했고,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락이가 찾아왔다.

 

“아기가 귓구멍이 없는데요?” 2018년 10월, 엄마는 산후조리원에 들어가서야 락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락이를 낳은 병원에선 무사히 청력 검사를 통과했는데 무슨 일일까. 제왕절개 상처가 아물지도 않은 배를 붙잡고 엄마는 산후조리원을 나와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교수는 락이의 머리를 만지더니 “다른 아기들보다 딱딱하다”고 했다. 의료진은 갓난아기인 락이의 몸에서 피를 뽑았고 유전자 검사를 했다.

 

두 달 뒤 부모는 락이가 ‘파이퍼증후군’이라는 선천적 희귀난치성질환을 갖고 있다는 검사지를 받아들었다. 파이퍼증후군은 두개골 뼈가 너무 일찍 붙어 뇌가 성장하지 못해 생기는 병이다. 락이는 이 병으로 광대뼈가 함몰돼 안구가 튀어나와 있고, 양쪽 눈도 다른 친구들보다 넓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넓은 것도 특징이다.

 

락이는 태어난지 4개월만에 첫 수술을 받았다. 그대로 있으면 뇌압이 증가해 머리 모양이 변형된다고 했다. 작은 머릿속 두개골뼈를 갈라 그사이에 나사못 모양의 철핀인 ‘신연기’를 꽂았다. 부모는 아침 7시와 저녁 7시마다 울리는 알람에 맞춰 락이 머리에 꽂힌 나사 네개를 한 바퀴 반씩 돌렸다. 그래야 뼈가 벌어져 뇌가 자랄 공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빠가 섬세한 손길로 나사를 돌리는 동안 엄마는 락이의 머리 근처 피부를 소독하고 거즈를 새것으로 붙였다. 락이 할머니와 부모, 락이까지 고생이 많았던 7개월이었다.

 

4살 락이의 인생에서 수술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많은 양의 뇌척수액으로 뇌에 압력이 가해지는 ‘수두증’ 때문에 수술했고, 계속되는 안구 돌출로 이마를 앞으로 빼는 수술도 받았다. 소뇌 위치가 정상보다 밑으로 내려와 척수액이 뇌의 빈 곳으로 들어가는 ‘아널드 키아리 기형’ 때문에 수술을 받기도 했다. 아픈 수술을 견디는 락이를 보며 부모는 먼저 무너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파이퍼증후군을 가진 아이들을 먼저 키운 부모들에게 언제 어떤 수술을 받게 될지 미리 들었기에, 앞으로 닥쳐올 아픔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대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수술이 익숙해졌을 때 찾아온 고비] 
 

락이가 특수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은 지난해 12월의 어느 날, 위급한 순간이 찾아왔다. 그날따라 락이의 숨소리가 가빴다. 불안한 마음에 락이와 엄마는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락이는 한참을 ‘꺽꺽’ 대다가 멈췄다. 엄마는 락이의 마스크를 내렸다. 입술이 검푸르렀다. 손도 함께 파래져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언뜻 들어본 적 있는 ‘청색증’이라는 단어가 엄마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여보! 더 가까운 병원으로! 빨리 좀 달려줘!” 엄마가 소리지르며 카시트에 앉은 락이를 재빨리 자신의 무릎에 눕혔다. 락이의 동공은 움직이지 않았다. 심폐소생술을 배운 적 없었지만 엄마는 락이의 입에 입을 붙이고 무작정 숨을 밀어 넣었고, 락이는 곧바로 숨을 뱉어냈다. 덜커덩거리는 차에서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엄마는 락이에게 숨을 불어 넣었다. 1시간 같은 15분이었다.

 

락이는 다행히 병원에 곧 도착해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이날 파이퍼증후군과 별개로, 락이의 기도가 다른 아이들보다 좁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목이 조금만 부어도 호흡이 어려워져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다고 했다. 곧 은퇴를 앞둔 대학병원 교수는 ‘이런 기도는 처음 본다’고 했다. “남편과 락이가 재활치료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막 무너지더라고요. 어떤 수술에도 꿋꿋이 버텼는데 말이에요. 간신히 감사할 것을 생각해냈어요. ‘기도가 안 좋아도, 우리 락이는 그 기도로 그래도 밥을 먹고 있지’라고 마음을 다스렸어요.” 엄마는 그때를 가장 아찔했던 순간으로 꼽는다. 락이는 지난 3월에도 또 한 번 청색증으로 인한 호흡곤란을 겪어 기도 내 삽관을 받았다.

 

앞으로도 락이는 어려운 수술을 받아야 한다. 당장 연골을 이식해 기도를 확장하는 수술이, 2∼3년 뒤엔 외이도를 넓히는 수술이 필요하다. 청소년이 되면 락이는 그동안 받은 수술 중 가장 어렵고 중요한 안구뼈 수술을 받게 될 것이다.

 

수술이 줄줄이 예정돼 있지만 형편은 녹록지 않다. 가구공장에서 일하는 아빠는 지난달 육아 휴직이 끝났지만 휴직을 이어가고 있다. 여러 차례 호흡 곤란을 겪는 락이에게 코로나19를 옮길까 걱정해서다. 대기업 등에서 일해온 엄마도 락이를 낳은 이후로 일을 그만뒀다. 교회 지인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다.

 

락이 가족은 수술비를 대느라 보증금이 적게 드는 경기도의 공공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는데, 서울 대학병원 근처로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청색증으로 락이의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을 두 차례 겪고 나자 내린 결정이다. 경제적 어려움이 걱정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실비 보험도 가입하지 못해 약값이나 수술비 부담이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꾸준한 재활치료와 발달치료도 필요하다.

 

 

 

[“락이와 하루를 보내서 행복했다”]
 

입원과 수술, 퇴원의 반복 속에서도 락이는 가족들과 열심히 일상을 살아간다. 지난해 여름에는 드디어 걸음마를 시작했다. 아직 ‘아빠’, ‘엄마’, ‘앉아’, ‘악어’ 등 몇 가지 간단한 단어를 말하는 수준이지만 언어치료도 열심히 받고 있다. 더디지만 자신만의 속도로 성장하는 락이다. 물론 또래보다 조금 더 불편한 부분도 있다. 기도가 좁아 음식을 삼키기 힘들어하는 락이는 아직 이유식을 먹는다. 선천적 외이도 폐쇄증으로 난청을 가져 좋아하는 뽀로로 애니메이션을 볼 때면 보청기를 낀다.

 

단단한 락이 엄마에게도 우울함이 몰려들었던 적이 있다. 남편은 일하느라 집에 없고, 혼자 락이를 돌보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할 때마다 시간이 빨리 흘러갔으면 했다. 가족은 모두 타국에 있고 한국에는 마음 하나 터놓을 친구도 없었다. 예전 직장 동료들은 연락이 닿으면 ‘애 아픈 건 어떻냐’고 물어보는데, 아픈 상황을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위로나 동정은 더욱 싫었다.

 

그때 엄마는 에스엔에스(SNS)를 시작했다. 지난해 1월 블로그에 락이가 쓰는 보청기 후기를 올렸다. 락이처럼 난청을 가진 아이들의 부모 20여명이 블로그에 공감을 표하며 보청기 정보를 묻는 댓글을 달았다. 아픈 아이를 둔 부모들에게 정보를 공유하고 힘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블로그와 유튜브에 락이의 일상과 치료 과정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 에스엔에스는 락이 엄마에게도 힘을 주고 있다. 락이와 관련해 쉽게 말을 건네지 못하던 락이 부모의 지인들은 유튜브를 보고 “락이가 이제 걷나보네요”와 같은 말을 자연스럽게 건넬 수 있게 됐다. 락이 엄마는 우연히 파이퍼증후군을 가진 아이의 부모를 만나 연락을 주고받기도 했다.


에스엔에스 기록은 엄마의 마음을 다독이고 격려한다. “힘든 마음들이 정리되지 않은 창고처럼 어지럽게 제 안에 쌓여 있을 때, 그걸 글이나 영상으로 끄집어내 기록하고 나면 ‘자, 딱 이만큼만 힘든 거야’라고 정리되더라고요. 그러면 다시 락이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생겨요.”

 

‘부모님은 락이가 어떤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나요’. 질문을 받은 부모는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부모는 미래를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잘 떠오르지 않네요. 저희는 매일 하루만 생각하고 살아가는 기분이거든요. ‘오늘은 락이의 웃는 얼굴을 봐서 즐거웠다’, ‘오늘은 아장아장 걷는 락이와 동네 산책을 해서 행복했다’ 이렇게요. 그러면 됐어요.” 그렇게 매일 밤 엄마, 아빠는 락이와 함께 보낸 ‘오늘 하루는 참 멋졌다’고 생각하며 잠이 든다.

 



<한겨레 나눔꽃 캠페인> 기사보기


네이버 해피빈 모금함 바로가기

 

최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