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을 겪은 선우(가명)의 곁엔 늘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그늘진 어린 마음에 빛을 비춰주는 등대였고 인생의 올바른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이었습니다. 그렇게 선우에겐 큰 세상과도 같던 할머니였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그 세상은 약해지고 작아져 갔습니다.
낡은 먼지투성이 잠바를 입고 학교로 나서는 선우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할머니는 한참이나 툇마루를 떠나지 못합니다. 선우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 미안하고 또 미안한 할머니. 언젠간 할머니 곁을 떠나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선우를 위해 지금 해줄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주고 싶습니다.
다섯 살 때 선우를 떠난 후 연락이 단절된 엄마 일거리를 찾아 집을 떠나 있는 일이 잦은 아빠 그런 선우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를 위해 장작을 구해와 보일러를 때고 입맛 없는 할머니를 위해 손수 비빔국수를 만드는 아이
쭈글쭈글하지만 여전히 따뜻한 할머니의 손을 오래도록 잡고 싶습니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는 선우는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혼자 계실 할머니를 위해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그려 집안 곳곳에 붙여두었습니다.
평소 농사일을 하는 선우의 아빠는 일거리가 없는 때에는 돈을 벌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닙니다.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 일거리를 구하는 것도, 몸을 써서 일을 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아빠는 늦둥이 아들 선우가 스스로 세상을 헤쳐갈 수 있는 어른이 될 때까지 아빠로서 끝까지 책임을 다하고 싶습니다.
그리운 아빠가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면 할머니 앞에서 의젓했던 선우도 영락없는 아이의 모습이 됩니다. 선우는 한편엔 할머니가, 또 다른 한편엔 아빠가 있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 그 어떤 것도 부럽지 않습니다.
어느새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할머니. 품에 쏙 들어올 만큼 작았던 선우를 이만큼이나 키워내는 동안 할머니는 많이 쇠약해지고 작아졌습니다. 꽃처럼 귀하게, 구김살 없이 키우고 싶었건만 너무 빨리 철이 들어버린 게 당신의 부족함 탓인 것 같아 항상 명치끝이 아려옵니다.
서로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되고 있는 두 사람 부디 두 사람의 남은 시간이 짧지 않기를. 늘 그랬듯 할머니의 툇마루에서 오래도록 함께 웃음 짓기를. 선우의 가족에게 행복한 시간을 선물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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