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우산 어린이재단 70th Anniversary

SINCE 1948

SINCE 1948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걸어온 길

1948년 CCF로부터 출발하여 지난 60여 년간 세상 모든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외길을 걸어왔습니다.
어린이재단은 한국의 사회복지 역사와 그 궤를 함께하며 기부 문화를 선도해 온 뿌리 깊은 아동복지 전문기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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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걸어온 길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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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1962
미국 원조를
받던 의존의 시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난민구제사업을 위한 모금전문가 클라크목사의
미국기독교아동복리회(CCF) 한국지부 설립으로시작됐습니다.
당시 클라크 목사는 중국아동돕기를 위해중국에 머물러 있었는데, 중국
못지 않게 심각했던 한국으로 눈을 돌린 것입니다. 1948년 10월 구세군
후생학원, 혜천원, 절제소녀관 3개시설에서 400여명의 아동을
대상으로 CCF 한국지부의 첫 재정지원이시작됐습니다. 1960년까지
아동복지에 대한 뚜렷한 방침이 없었던 한국에서 CCF의 아동구호는
여러 외국 원조기관 중에서도 양적, 질적으로 주목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1963~1975
아동복지사업의 선두로
발돋움한 시기

한국전쟁으로 인한 구호가 어느정도 해결되었지만 복지시설에서 생활
하는 어린이의 수는 계속 증가했습니다. 당시 CCF는 ‘아동은가정에서’를
모토로 가정중심의 아동복지사업을 제시했습니다. 시설에 수용된 아동
중 연고자가 있거나 입양, 위탁 등으로 가정으로 복귀시킬 수 있는
아동은 가족의 품안에서 키우도록 한 것입니다. 이 때 탄생한 아펜셀라
어린이회는 미국의 후원자와 한국어린이를 1대 1로 결연하는 사업을
전개하며 거택보호사업을 본격화했습니다. 더불어 직영사회복지관을
운영하고, 낮 동안 부모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돌보는
어린이집과 지역의 사회복지기관들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했습니다.
이는 현재지역 내저소득층을 통합적으로 지원하는‘사회복지관’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1976~1986
자립 준비의 시기

한국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CCF는 아프리카 아동을 돕기 위해
지원을 종결했습니다. 대신 CCF는 재단이 사업을 무리없이 계승하도록
10년의 완충기간을 두었습니다. 재단은 CCF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민간
사회복지기관으로 도약하기 위해 후원자 개발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재단은 경제발전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과 ‘우리아이들은 우리 손으로돕자’는 물결에 힘입어 결연 사업의 정부수탁, 서신 교류서비스 시작,
전국후원회와 해외후원회조직, 언론과의 활발한 협력 등 후원자 개발 및
기금 마련에 힘썼습니다. 실종아동찾기사업을 실시한 것도 이 때입니다.
1983년 미아찾기운동을 추진한 재단이 1986년 정부로부터 어린이
찾아주기사업을 공식 위탁 받아 운영했습니다. CCF는 1986년에 이르러
약 1억달러, 10만명 지원의 빛나는 역사를 뒤로하고 외원지원을 종결
했습니다. 재단은 ‘한국어린이재단’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1987~1996
국내복지사업 확장의 시기

재단은 자립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하고 새로운 복지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결손가정아동을 포함해 소년소녀가장, 65세이상노인, 장애인 등으로
사업대상을 확장했습니다. 그러한 사업방향을 반영해 명칭을 한국
어린이재단에서 한국복지재단으로 변경했습니다. 당시 재단은 정부차원
에서도 활성화시키지 못한 가정위탁보호사업을 시도, 1993년부터 가정
위탁양육을 수행했습니다. 또 아동학대예방사업을 조직화하는 과정에서
아동복지법을 개정하고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설립하는 등 아동보호
사업의 역사에 선명한 자취를 남겼습니다. 생방송과 담뱃갑 광고 등을
활용한 실종아동찾기사업도 활성화했습니다. 이 시기에 본격적인 해외
아동돕기사업에도 뛰어들었습니다.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 아시아
3개국 지원을 시작으로 해외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며 전문 사회복지기관
으로서 도약하는 시기를 맞았습니다.

1997~2007
해외사업 본격화의 시기

IMF 외환위기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복지사업의 다각화를
실시했습니다. 사회복지관내에 아동가족상담센터를 통합해 운영했고,
구로노인복지관•중증장애 아동을 위한 한사랑장애영아원•중증
장애인 자활을 위한 한사랑 학교 등 을 개소해 복지사업의 대상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더불어 아동보호전문기관 8개소를 개소했습니다. 2003년
에는 이미 시행하고 있던 가정위탁사업을 10개소로 확장 운영했으며,
2005년 보건복지부로부터 공식위탁받아 실종아동전문기관을 개소
했습니다. 한편 해외사업을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2002년에는
국제어린이재단연맹(ChildFund Alliance)의 회원국으로 가입해 중국,
스리랑카, 에티오피아, 우간다 등 을 지원했습니다. 2001년 부터는 대북
지원사업을 시작, 영양 및 보건의료지원사업 등 을 전개했습니다.

2008~
글로벌아동복지대표기관을 목표로!

재단은 2008년 1월창립 60주년을 기념해 CCF의 정신을 계승, UN 아동
권리협약을 기초로 복지대상을 아동으로 재편하고, 명칭을 ‘어린이
재단’으로 변경했습니다. 어린이를 폭력과 학대로부터 예방, 보호하기
위해 2009년 실천적 아동폭력예방프로그램인 CAP을 국내 최초로 도입
했으며, 성학대 피해아동지원을 위한 캠페인을 실시해 아동성폭력
가해자 공소시효 폐지 법안을 통과시키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재단은 대표아동복지전문기관으로 성장한 만큼 기부 문화를 활성화
시키기 위해 각계각층의 단체 및 시민들과 함께 사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모금전문가육성, 사회적 관심을 유도하는 홍보•마케팅 강화,
보편적 아동 행복을 위한 권리 옹호 캠페인 전개, 후원자 서비스 강화 등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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