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사업 [한겨레 나눔꽃 캠페인] 배에 꽂힌 튜브로 분유만...

2021.10.132,503

텍스트 축소 버튼텍스트 확대 버튼

[한겨레 나눔꽃 캠페인] 배에 꽂힌 튜브로 분유만...

7살 우리 천사 다른 맛있는 음식 한번만 먹여봤으면

 

뇌병변 장애에 후천성 소두증
잦은 발작에 매달 1~3차례 입원
빚내고 전세 보증금 빼 치료비 마련

 

 

지난달 29일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지윤(가명)이가 주사를 통해 물을 섭취하고 있다. 고양/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윤(가명·7)이가 칭얼거리자 아빠는 능숙하게 지윤이 배에 달린 위루관에 주사기로 물을 넣었다. 음식을 씹거나 제대로 삼키지 못하는 지윤이는 4살 때부터 위루관으로 영양분을 섭취했다. 지윤이는 목을 살짝 돌리는 정도 외에는 걷거나 몸을 가누지 못했다.

 

지윤이는 중증 뇌병변 장애에 더해 희귀 난치성 질환인 ‘레트 증후군’이 있다. 레트 증후군은 주로 여아에게 나타나는 신경계 발달 질환으로, 보통 출생 후 6~18달까지는 증상이 보이지 않다가 그 이후 나타나기 시작한다. 다리의 경축(근육 이완 지연) 등으로 제대로 걷지 못하고, 발작을 일으키고 불규칙적으로 호흡하며, 음식을 먹고 삼키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머리의 성장이 느려지는 후천성 소두증이 생기기도 한다.

 

 

 첫돌에 장애 진단, 좌절할 여유도 없어

 

지윤이는 태어난 지 6개월이 지나도 목 가누기나 뒤집기를 전혀 하지 못했다. 발달이 느린 게 걱정돼 재활의학과를 찾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이 터졌다. 돌 즈음, 아이가 크게 발작을 한 것이다.

 

“아이가 자다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눈이 돌아가고 겁에 질린 것 같은 얼굴로 소리를 질렀어요. 뇌파 검사를 했더니 수시로 경기를 일으키고 있었던 거예요. 첫 아이라 아무것도 몰랐고, 겉으로 티가 나지 않을 때가 많아 저희는 그게 경기인 줄도 몰랐어요.” 이후 지윤이는 뇌병변 장애 진단을 받았다. 엄마와 아빠는 멀게만 느껴졌던 장애가 내 아이의 이야기라는 말이 청천벽력 같았다고 한다.

 

하지만 좌절할 여유도 없었다. 지윤이는 돌 이후 4살 때까지 심한 발작을 매달 1~2번씩 했다. 잦은 발작과 각종 병으로 매달 적어도 1번, 많게는 3번씩 입원도 했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는 일이 잦아 구급대에서도, 병원에서도 지윤이 이름만 이야기하면 빠르게 준비를 마칠 정도였다.

 

지윤이는 수없이 입/퇴원을 반복하면서도 아프다는 표현도 거의 하지 못한다. “의사소통을 잘 못하다 보니 아프다는 표현을 기껏 해봐야 ‘힝’이라고 하며 울상을 짓는 정도였어요. 열이 39도로 나도, 주삿바늘로 5번씩 찔려도 울지도 않아요. 가족끼리 지윤이가 저희보다 더 어른이라고 할 정도예요. 엄마로선 차라리 아이가 아프다고 떼를 쓰고 울기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더 속상하죠.”

 

지난달 29일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지윤(가명)이의 아버지가 아이의 손을 잡고 있다. 고양/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중환자실에서 흘리는 눈물

 

지윤이는 4살 때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감염증으로 심한 폐렴에 걸려 45일가량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는데, 엄마는 ‘이러다 정말 아이를 보내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수백 번도 넘게 했다고 한다. 하루는 “아이가 엄마를 너무 찾는다”고 해 가보니 지윤이가 조용히 울다가 엄마를 보고 눈물을 그쳤다고 한다. 이때 처음으로 ‘지윤이가 표현을 못 해도 엄마를 아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지윤이는 무사히 퇴원했지만, 위루관을 복부에 삽입했다. 여러 검사 끝에 ‘레트 증후군’이라는 병명도 알게 됐다.

 

 

 전세 보증금을 치료비로

 

아빠 혼자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버는 월 176만 원으로는 아이의 치료비를 감당하기 버겁다. 국악을 배운 엄마는 지윤이를 낳기 전 방과 후 풍물 강사로 일했는데, 지윤이가 태어난 뒤로는 일을 그만둬야 했다.

 

지윤이네는 차상위 계층이지만, 지윤이가 입원하면 비급여 항목인 면역치료 등을 받아야 할 때가 많아 매달 병원비로만 100만 원가량 들었다고 한다. 지윤이가 먹는 특수 분유 비용만 매달 20만 원, 위루관 소독을 위한 의료용품 비용, 기저귓값 등 만만치 않다. 결국 부부는 신혼집 전세 보증금 8천만 원을 빼 모두 아이 치료비에 쏟아부어야 했다. 지금 지윤이네는 엄마의 친정 오빠 집 방 한 칸에 얹혀살고 있다. 그러고도 병원비와 생활비가 모자라 대출을 받았다.

 

 

 맛있는 음식을 조금이라도 맛볼 수 있다면

 

종일 아이를 돌보고, 발작을 일으킬까 봐 몇 년 동안 밤에도 제대로 잠들지 못했던 엄마는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아이랑 종일 같이 있는데 아이가 움직이지도 못하고, 아이와 같이 밥을 먹거나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으니까 혼자 있는 기분인 거예요. 아이에게 ‘엄마’라는 말 한 번만 들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어요.”

 

그래도 엄마와 아빠는 지윤이가 음악 치료와 미술 치료를 받는 모습을 보며 희망을 얻는다. 기분이 좋으면 콧소리를 내고 옹알이를 하기도 한다. 이런 방식으로 혀 근육을 써야 지금보다 잘 먹을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돈이 많이 들지만 치료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지윤이가 분유 말고 다른 맛있는 음식도 조금이라도 맛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만 바랄 뿐입니다.” 

 

 

지난달 29일 경기도 고양시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지윤(가명)이의 집에 ‘밝은 미소 상’이라고 적힌 상패가 놓여 있다. 고양/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한겨레 나눔꽃 캠페인> 기사보기

 

네이버 해피빈 모금함 바로가기
 

 

챗봇 후원하기 후원하기 챗봇 닫기
최상단으로